시와 잠언

 

 

 

채광기(採鑛記)                                 오정환 우리가 닿아야만 할 확신의 나라 가장 빛나는 마을 어귀까지 나의 貨車(화차)는 달리고 있다. 아직도 분별되지 않는 형상들의 정수 떨어져 쌓이는 좌절을 실어나르며 혼미의 동굴, 숨죽여 누운 어둠의 깊은 강을 건너 나의 불면의 화차는 달리고 있다 잠들어버린 세상의 곤혹도 먼지 묻은 온갖 생애마저도 뜨겁게 아프게 쏟아내면서, 나는 외줄기 불빛이 밝히는 마태복음 십삼 장 십삼 절 이사야의 예언의 하얀 소금이 되어 써늘하게 살아 있다 밤마다 밤마다 동결된 흙더미를 찍어내는 나의 야망의 삽날 은밀한 집중, 캄캄한 어둠 우리들의 가난 속으로 흘연히 하늘은 밝아올 것인가. 선혈처럼 뜨거운 金脈(금맥) 끝없이 이어진 성스러운 새벽의 나라 가장 빛나는 마을어귀까지 나의 貨車(화차)는 달리고 있다. 우리 모두는 금맥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이다. 그곳은 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어둠을 뚫고 화차를 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좌절을 실어나르며 어둠의 깊은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러면 캄캄한 어둠 속을 벗어날 가장 빛나는 성스러운 새벽의 나라에 이르
짐승에게도 욕을                                  유홍준 짐승에게도 욕을 한다 짐승에게도 욕을 바가지로 퍼붓는다 어머니는 혀가 빠질 놈의 짐승이고, 잡아먹을 놈의 짐승이고, 때려죽일 놈의 짐승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욕을 바가지로 퍼붓고 가축들에게 사료를 준다 바가지로 탁 대가리를 때리고 바가지로 탁 등골짝을 때리면서 준다 그러면 내 착한 아들처럼 어머니의 짐승들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고개를 처박고 후루룩후루룩 밥을 먹는다 옛 시골 집에서 기르던 짐승들은 가족과 같았다. 가족이 먹고 남은 음식을 전부 모아 짐승에게 주었다. 음식 찌꺼기가 가축들에게는 사료였다. 지금과 같이 사료가 제품으로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할은 설거지를 도맡은 어머니의 몫이다. 짐승들에게 바가지에 담은 음식을 주면서 어머니는 욕을 한 바가지씩 퍼붓고 있다. 욕뿐만 아니라 바가지로 머리와 들골짝을 때리기도 한다. 시인의 관심은 그 짐승들에게 퍼부었던 욕과 때림이 짐승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 첫 시구에서 는 말은 짐승에게만 욕을 퍼부은 것이 아니었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과 격한 노동의 하루하
 얼굴 없는 성자聖者                                                 강영환 지하철 초량역 7번 출입구에는 성자가 살았다 종이컵을 비스듬히 받들고 엎드려 남은 손으로 끌어 모다 쥔 옷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 품에 간직한 미명은 계단을 오르지도 내려서지도 않았다 지나는 바람이 끌어다 모은 나뭇잎 부스러기가 곁에서 바스 락 거려도 얼굴을 가린 그늘은 벗겨지지 않았다 그는 소돔을 벌하러 온 천사 혹은 악마? 묵은 종이컵이 그를 버린 것인지 세상을 버린 것인지 별스 런 추측도, 동정심도 없이 행인들이 갔다 마주치지 않아 편안한 눈은 종이컵에 담겨진 동전 몇 개에 도 눈시울 붉게 저렸다 이 시대에 성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이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상화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인은 지하철 출입구에 웅크리고 앉아서 행인들에게서 동전 몇 닢을 구걸하고 있는 걸인을 성자라고 노래한다. 그를 왜 시인은 성자로 명명하고 있을까? 그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어떻게든 많은 것을 소유해야 살아갈 수 있다. 소유가 전부인 시대에 무소유의 삶의 한 전형을 보이는 걸인에게
청학재(淸鶴齋)시편 ― 석류                                               성선경 대나무 그늘이 짙은 외갓집 뒤란에서 한 평생을 늙어 아직도 하지 못한 말들이 보석처럼 박혔을 큰외숙모 나는 태어나 백일 전후 그 큰외숙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내 위로 외사촌 형이 한 분 아래로 나와의 한 살 터울 외사촌 여동생이 하나 그 사이에서 내 살겠다고 연꽃 같았을 외숙모의 젖을 악착같이 빨았을 나는 참 미운 덩굴이었을 텐데 이제 팔십이 내일 모레 한 노인이 되었어도 아들같이 나를 기다려 동동주를 담는다. 나는 모른 척 동동주 몇 잔에 술이 올라 불쑥 젖값이라 봉투 하나 내밀고 돌아오는데 언제 따셨는지 뒤란의 석류 하나 손 쥐어주며 길 가며 먹어라 속 파인 석류 같은 웃음 하 웃으신다. 참 보석은 늘 감추어진 곳에 있다 숨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숨길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그 곳에 있다가 어느 날 눈물같이 확 쏟아진다 내 또 다른 어머니. 이 땅에서 인간이 찾을 수 있는 가장 귀한 보석은 무엇일까? 여인들의 몸치장에 사용된 화려하게 빛나는 아름답게 세공된 소위 보석들일까? 시인이 노래하는 참
우포늪 왁새                           배한봉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 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 꿈속에서도 폭포 물줄기 내리치는 한 대목 절창을 찾아 떠돌더니 오늘은 왁새 울음 되어 우황산 솔밭을 다 적시고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살아서는 근본마저 알 길 없던 홀홀단신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켜 수염을 흔들곤 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필생 동안 그가 찾아 헤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 속에 있었던가 소옥 장재 토평마을 양파들이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저 왁새들 완창 한 판 잘 끝냈다고 하늘 선회하는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이 우포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우포늪을 찾아든 으악새의 소리를 통해, 평생 득음도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의 환생을 본다. 그 소리꾼의 영혼이 우포늪 꽃잔치를 무르익게 한다는 시인의 노래는 우포늪의 식물과 생물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어야 함을 말한다.
낙동강 하구에서                                   허만하 바다에 이르러 강은 이름을 잃어버린다. 강과 바다 사이에서 흐름은 잠시 머뭇거린다. 그때 강은 슬프게도 아름다운 연한 초록빛 물이 된다. 물결 틈으로 잠시 모습을 비쳤다 사라지는 섭섭함 같은 빛깔. 적멸의 아름다움.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커다란 긍정 사이에서 서걱이는 갈숲에 떨어지는 가을 햇살처럼 강의 최후는 부드럽고 해맑고 침착하다. 두려워 마라, 흐름이여 너는 어머니 품에 돌아가리니 일곱 가지 슬픔의 어머니. 죽음을 매개로 한 조용한 전신(轉身). 강은 바다의 일부가 되어 비로소 자기를 완성한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 바다의 일부가 되는 순간, 이제는 강물의 정체성을 버리고 바닷물로 몸을 바꾸어야 한다. 강물의 흐름처럼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존재를 변화시킨다. 변화의 순간 인간도 몸을 바꾸어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이 과정이 자기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강물이 몸을 바꾸고 바닷물이 되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이치를 통해, 시인은 인
물을 만드는 여자                                    문정희 딸아, 아무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 쉬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물은 생명이다. 그 물이 인간의 몸으로부터 나온 것일 때, 생물을 키우는 거름이 된다. 오줌은 그 대표격이다. 그 오줌을 자연의 대지에 눌 때의 자세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감각적이고도 섬세하게 노래하고 있다. 라고 권한다. 그러면 듣게 되고, 듣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어머니가 생명의 근원임을 엿듣게 된다. 비와 흙 비가 오는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 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봄날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산다는 것,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안다는 것은 지혜로운 삶이다. 시인은 나 아닌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볼품없는 것 같은 연탄이 한 덩이 재로 남겨지는 과정을 통해 이라고 노래한다. 타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4. 낙엽수 낙엽수는 봄부터 옷을 입기 시작한다. 한 여름엔 그 더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 조달곤 나를 비운다는 것은 가을 한 철 억새꽃이 되어 은빛 물결로 살다가 바람이 된다는 것 바람으로 살다가 바람소리 떠나보내고 다시 고요해진다는 것 한겨울 빈 가지가 되어 눈 오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겨울 숲속의 나무와 같은 문장을 쓴다는 것 나를 비운다는 것은 폐사지 탑 그림자처럼 마른다는 것 산그늘처럼 마른다는 것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이 마른다는 것 내 안의 축축한 죄의 기억을 몰아낸다는 것 내 안의 슬품과 울음 한 됫박을 덜어낸다는 것 단순해진다는 것 침묵한다는 것 기다림을 받아들인다는 것 나를 비운다는 것은 죽음을 산다는 것 인간이 지닌 욕망은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로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욕망은 꿈과 희망으로 변용되어 인간의 삶을 추동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적절히 제어되지 않으면 오히려 인간의 현실적 삶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조달곤 시인은 그 제어를 비움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 비움의 이미지들이 시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결국은 에 이른다. 연륜이 빚은 지혜로운 잠언에 이른 깨달음이다. 온전한 비움은 늘 나를 무화(無化)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배추                              정일근 어머니에게 겨울 배추는 詩다 어린 모종에서 시작해 한 포기 배추가 완성될 때까지 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 노란 속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 손등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 나는 한 편의 詩를 위해 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어 어머니 온몸으로 쓰신 저 푸르싱싱한 詩앞에서 진초록 물이 든다 사람의 詩는 사람이 읽지 않은 지 오래지만 자연의 詩는 자연의 친구가 읽고 간다 새벽이면 여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읽고 사마귀가 뒤따라와서 읽는다 그 소식 듣고 종일 기어온 민달팽이도 읽는 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詩 시집 속에 납작해져 죽어버린 내 詩가 아니라 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 살아서 숨을 쉬는 詩 어머니의 詩. 해마다 수 천 편의 시가 발표되고 있다. 그런데 그 시들이 살아있지 못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시는 이제 시인들끼리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있다. 생명력이 없는 시는 공감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늘날 시의 현실을 매섭게 성찰하면서 정일근 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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